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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봤다
‘써봤다’는 기억은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가.
기기류를 손에 넣으면 설명서도 한 번쯤 읽어보고, 있는 기능은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편이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써봤던 기계에 대해서는 제법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DSLR-A900의 두뇌를 손보기 전(펌웨어 업데이트)에 초기화를 한다고 이 키 저 키를 눌러보다가 문득 ‘AF/MF’라고 적힌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였지 싶어 눌러보니, 적힌 그대로 AF와 MF를 오가는 전환 클러치 버튼이었다.
구형 렌즈에는 QSF나 DMF 같은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 제법 유용했겠구나 싶었다.
물론 곧이어 다른 생각도 들었다. 초점 피킹 기능도 없이, 과연 내 눈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었을까?
이상하다.
A 마운트 경량기 쓰던 시절 DSLR-A900도 옆에서 몇 번 만져봤고, 인터페이스가 거의 같은 A700은 배터리 그립까지 달아 몇번 사용하였다.
그런데 AF/MF 전환 버튼에 대해서는 기억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A900의 ‘인텔리전트 프리뷰’는 기억하고 있다. 아마 셔터가 움직였는데 사진이 저장되지 않아 ‘왜 찍혔는데 남지 않지?’ 하고 의아해했던 순간 덕분일 것이다.
수없이 눌렀을지도 모르는 버튼 하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한 번 고개를 갸웃했던 기능은 십수 년이 지나도 남아 있다.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사용한 시간이 아니라,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낯설게 여겼는지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써봤다’는 말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나 보다.
우리는 기계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기계 앞에서 잠시 멈춰 섰던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겠지.